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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

by 서민-아빠^^^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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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지킨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의 삶과 업적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유산을 수호한 대표적인 문화 독립운동가로, 그의 호인 ‘간송(澗松)’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국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을 지켜낸 전형필 선생의 삶은, 무기를 들지 않고도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전형필의 생애


1906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난 전형필은 상업으로 큰 부를 이룬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에 유학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했습니다. 이후 그는 막대한 유산을 문화재 수집과 보존에 투자하며 평생을 조선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바쳤습니다.

문화재 보존 활동


전형필은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 속에서도 조선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며 고서, 불경, 도자기, 고화 등을 수집했고, 1938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그의 수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관·전시하며, 한국 문화유산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 중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과학성을 설명하는 이 귀중한 책은 당시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전형필은 거액을 들여 이를 매입하고 조선 내에 은밀히 보존했습니다. 또한, 국보 제68호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역시 그의 수집품 중 하나입니다.

민족 자존의 상징


전형필이 수집한 문화재는 단순한 고미술품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지켜낸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문화는 민족의 뿌리이며, 뿌리를 지켜야 민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문화유산의 보존을 통해 조국의 정신적 독립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무장투쟁이 아닌 문화적 투쟁으로 조국의 혼을 지킨 그의 삶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식이자 귀감이 됩니다.

후대에 미친 영향


전형필은 생전에 많은 문화재를 국가에 기증하거나 전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시켰습니다. 그는 **문화훈장 동백장(1964)**과 **금관문화훈장(2014, 추서)**을 받았으며,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문화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설립한 간송미술관은 현재까지도 한국 전통문화 보존과 연구의 핵심 기관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결론

전형필은 총 대신 문화재를 들고 조국을 지켜낸 진정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문화유산은 단순한 유물이 아닌,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자존과 저항의 상징입니다. 전형필의 삶을 기억하고, 그가 지켜낸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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